반짝이던 밤
마토 | 코하
신샤 |신시코하
“메리 크리스마스.”
“……하?”
분주히 움직이던 시호의 손이 멈추었다. 그날은 아주 지극히도, 평화로운 날이었다. 며칠간 부진하던 실험에 차도가 보였고, 성공을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순조로운 그 결과에, 드물게도 기분이 좋았다. 평소보다 커피를 조금 더 진하게 타 실험 결과를 저장하고, 마지막 사인을 마치려던 때에 굳게 닫혔던 문을 열고 불청객이 걸어들어오기 전까지는.
불청객은, 닫혔던 문을 젖히고 벽에 비스듬히 서서 시호를 향해 웃어 보였다. 온통 검은 옷과는 다르게 대조되는 흰 장갑. 그는 흰 장갑을 매만지며 익숙하다는 듯이 방 안을 뚜벅뚜벅, 걸어들어와 한쪽에 놓인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에 시호가 잔뜩 불쾌한 얼굴을 하곤, 몸을 돌려도 그는 태연스레 웃어 보일 뿐이었다.
“뭐 하는 거야? 쿠도군.”
“크리스마스에 뭐해?”
“…뭐?”
“아, 혹시 모르나. 크리스마스 같은 거.”
“혹시 머리 어디라도 잘못 맞았어? 정신이 나간 거야?”
소파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꼰 신이치는, 시호의 타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을 까딱이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 당연히 시호는 사납게 되물었지만, 신이치는 오히려 능글맞게 웃으며 턱을 괴었다. 시호는 몸을 완전히 틀어, 한 손가락을 제 관자놀이 근처에서 빙빙, 돌리며 꾸짖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도, 신이치는 여유롭게 웃으며 오히려 시호의 호칭을 타박했다.
“아무리 둘만 있다고 해도 이름은 부르면 안 되지.”
“……”
“언제 어디서 누가 듣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
“……”
“안 그래?”
셰리.
푸른 눈동자가 가늘게 좁혀졌다. 여전히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발로도 모자라 고개를 까딱이는 그에, 시호는 혀를 차며 입을 다물었다. 용건이나 말해. 리큐어. 한번 지적을 받았다고 바로 고쳐진 호칭에, 신이치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을 뱉으며 제 바지 주머니를 뒤적였다. 용건은 말했잖아. 신이치는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어, 뚜껑을 두어 번 열었다 닫으며 답했다.
“크리스마스에 뭐하냐고.”
“……”
몇 번 뻐끔거리던 시호의 입이 꾹 다물렸다. 무언가 일정을 말하려고 했지만, 딱히 일정이랄 것도 없었고 원래 기념일 따위 챙기는 성격이 아니라, 어느 때와 다름 없이 연구로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 시호의 생각을 손쉽게 간파했다는 듯이 저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리고 입술을 말아 다문 시호를 보며 신이치가 소리 없는 미소를 지었다. 카랑카랑, 연속으로 지포 라이터의 소리를 내던 신이치가 오케이. 하는 말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할 거 없다는 걸로 알고. 간다.”
“잠깐, 대체 무슨…!”
대충 제 바지춤에 지포 라이터를 구겨 넣은 신이치가 휘파람을 불며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호가, 일순 정신을 차리고 그를 재차 부르자 신이치는 문고리에 손을 올려두며 남은 한 손을 흔들었다.
“또 올게.”
“……”
“크리스마스에.”
나도 할 거 없거든.
고개만을 튼 채로 씩, 미소 지은 신이치가 웃음을 거두며 문을 닫고 나섰다. 마치 폭풍과도 같았던 불청객의 방문이 끊긴 방안은 익숙한 적막함을 풍겼다. …허. 시호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헛웃음이 터졌다. 잠시 닫힌 문을 바라보던 시호가 쯧, 혀를 차며 몸을 다시 틀어 불청객 때문에 멈추었던 사인을 마저 휘갈겼다. 몇 번의 전자음과 함께 마친 오늘치의 보고서를 닫으며 시호는 한숨을 쉬었다. 카랑거리는 지포 라이터의 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담배 따위 피지도 않는 주제에….”
입고 있는 백의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시호가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의 앞에서 담배를 피웠던 다음날, 그의 주머니에 지포 라이터가 생겼고 자신이 금연하겠다며 흘리듯이 이야기했던 다음 날, 그의 주머니에 있던 지포 라이터는 그 후부터 불을 피우지 않았다. 시호가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때도, 그는 담배는 커녕 오히려 냄새가 지독하다며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랬던 그였는데.
시호는 그의 주머니에 자리를 잡은 지포 라이터가, 그때에도, 지금도 여전히 불쾌했다.
“셰리씨, 이거.”
“…이게 뭐야?”
“선물입니다. 리큐어씨의.”
시호가 영문 모를 표정을 하며 제게 작은 네모 상자를 건네준 연구원에게 되물었다. 시호에게 재차 답해주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그가 부탁했다며 짧게 답한 연구원이 자신의 할 일은 끝났다는 듯 가볍게 목례를 하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건 시호뿐이었다. 붉은 포장지와 곱게 묶인 초록색의 리본. 흔히 이 시기면 다가오는 기념일을 상징하는 그 색이라, 시호는 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제 방에 불쑥 찾아온 그 뒤로,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며칠 씩 예고없이 불쑥불쑥 찾아와 저에게 욕을 들음에도 뻔뻔한 얼굴을 하고 다시 왔으면서,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그 날 이후로 모습조차 찾을 수 없어 시호는 괜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의 행방을 다른 이들에게 묻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이 넘겼지만 정도 미운 정이 무섭다했던가, 꼬박꼬박 찾아왔던 귀찮은 것이 며칠 눈에 띄지않는다고 몇 배로 신경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에 더 기가막힌 것은, 지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는 주제에 선물이라는 것들은 꼬박꼬박 타인에 의해 매일 시호에게로 배달되었다. 신이치가 모습을 감춘 다음날을 시작으로, 그가 연구실에 출근을 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매일 다른 연구원들이 아침 인사와 함께 시호에게 선물을 건넸다. 어느 날은 초록색 포장지에 붉은 끈, 어느 날은 붉은 포장지에 초록 끈. 꼴에 지겹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으려고 했는지, 초록색과 붉은색은 매일 서로 자리를 뒤바뀌어 선물의 형태가 되었다.
“이거… 혹시 나에게 싸움을 거는건가? 일종의 시비같은거야?”
“음, 그런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라고?”
“네. 애초에 시비를 걸거였으면 연구실에 매일 찾아왔겠죠.”
셰리씨 리큐어씨가 모습을 보이기만해도 혀부터 차잖아요. 연구원들은 빌어먹게도 다들 눈치들이 좋다. 저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습관과도 같은 행동을 귀신같이 잡아채었다. …내가 그랬어? 하고 묻는 시호에, 오늘의 선물 담당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정말 몰랐냐는 듯이.
“그런데 안 찾아오잖아요. 요새는 모습도 안보이고.”
“……”
“조직원들 사이에서는 뭐, 큰일을 하러 갔다가 어떻게 된게 아니냐고는 하는데…”
“……”
“최근 진씨가 좀 의심했거든요. 리큐어씨 노크가 아니냐고.”
싸아, 시호는 몸에서 모든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을 느꼈다. 노크라니. 누가. 그가?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재수없게 빙글빙글 웃어대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그는 빌어먹게 재수없었지만,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리 몰라도, 시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에게 올곧음이란 자신의 오른팔과 마찬가지면서, 자신의 이마에 들이미는 총구와도 같은 것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팔이 언제 자신을 배반하고 이마에 은총알을 박아넣을지 모른다며 진은 그를 꾸준히 경계했었다. 진이 때때로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란, 그 말간 이마에 총알을 쑤셔넣기 직전의 것들이어서 시호는 종종 불안을 삼켜내야만했다. 그렇게 간신히 붙잡고 있던 허름하기 짝이 없던 무언가가 끊어진 것 같아 선물을 쥐고 있던 시호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뭐, 평소처럼 귀찮은 일이었다며 금방 돌아오겠죠.”
“……”
“죽음조차 그를 사랑한다고 일컬어지는 사람 아닙니까.”
“……”
“저번에 온 몸이 피투성이인 상태로 조직원한테 들려서 돌아올땐 얼마나 놀랐는지… 안 죽은게 용해요.”
이젠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은 연구원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시호의 어깨를 두어 번 치며 자리로 돌아갔다. 조직에서 그를 일컫는 말은 많았다. 조직의 이단아, 조직의 헤드, 올바름의 에고이스트 등등… 의레 그의 명석한 두뇌와 조직원 같지 않은 가치관을 칭하는 말들이었지만 그 중 조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칭호는 당연 ‘죽음조차 사랑하는 남자’ 였다.
조직의 네임드 답게 굵직한 임무들을 맡아온 그는 며칠 씩 소식이 끊길때가 잦았다. 그리고 그 후에는 어김없이 몸에 바람구멍을 달고 오거나, 다른이의 것이었으면 좋았을법한 혈흔 범벅인채로 꼭 누군가에게 붙들려 왔었다. 그때마다 조직의 의사를 겸임하고 있는 시호에게 실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베드에 눕혀져 창백한 낯빛을 하곤 이번에도 귀찮은 일이었다며 지껄이는 신이치의 입을 더 이상 지랄하면 꿰매버릴거라며 협박하는 일들이 잦았다. 그럴때마다 그는 아픔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웃으며 곧잘 말하곤 했다.
괜찮아, 너도 알잖아. 죽음조차 날 사랑한다는거.
그가 능청스레 그런말을 할때마다,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한다며 일부러 상처 부위에 자극을 주었지만, 그는 아악! 짧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입에 걸린 웃음은 지우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몸이 한 두가지 엉망진창이 되어 올때마다 그는 그러했다. 자신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죽음조차 자신을 너무 사랑해 빗겨간다고. 하지만 시호는 그의 너덜거리는 몸을 볼때마다, 그 상처를 봉합하면서, 멈추지 않는 혈흔을 지혈하며 틀어막을때마다 생각했다.
죽음조차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누굴 사랑하지?
수고하셨습니다. 계획해두던 오늘치의 실험과 연구가 끝나고 연구원들이 지친 몸을 주무르며 일들을 갈무리했다. 빠릿하게 정리해 멀끔해진 실험실을 뒤로 한 시호는 문단속을 꼼꼼히 한 뒤, 제 방으로 걸어갔다. 일부러 느릿하게 걸어갔으나, 평소 자신이 방으로 돌아올 때 벽에 기대어 얄미운 미소를 하며 인사를 건네던 그는 없었다. 시호는 그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문고리를 잠시 내려다보다, 그 위를 겹쳐잡았다. 온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아….”
짜증나.
기분이 더러웠다. 그 하나에 이렇게 기분이 오락가락 하는것도, 그 하나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휘둘리는 것도. 오랜만에 담배가 고팠다. 과거의 자신이 금연한다고 말했지 않았냐며 노려보는 것 같았지만, 지금의 시호는 과거의 시호에게 손을 휘적이며 양해를 구했다. 오늘만 용서해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문의 잠금장치를 걸어잠근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쇼파로 걸어와, 주저앉았다.
난데없는 불청객이 앉았던 자리. 희미한 온기라도 남아있을줄 알았건만, 그마저 남아있지 않아 시호는 쯧, 혀를 찼다. 역시, 필요할때는 흔적 하나 조차 남기지 않는다. 빌어먹게도. 구겨진 백의의 주머니에 손을 아무렇게나 찔러넣던 시호가 몇 번의 휘적임과 함께 네모난 작은 곽을 꺼내들었다. 입구를 열고 두어 번 툭툭, 털자 하얀 담배 한 개비가 톡, 튀어나왔다. 그것을 입에 문 시호가 손에 쥔 담배곽을 쇼파에 아무렇게나 던지곤 옆으로 고개를 틀었다.
“불.”
“……”
“…아, 젠장.”
그가 담배를 꼬나문 잇새로 욕을 흘렸다. 신이치는 지포 라이터를 들고다녔다. 그가 담배를 핀 다는 것을 알았을때부터. 그것은 언제나 신이치의 바지 주머니에 존재했지만, 그가 라이터를 들고다닌다는 것을 아는 이는 시호뿐이었다. 그는 라이터를 항상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꺼내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꺼내는 일이라곤 시호의 옆에서, 그가 담배를 입에 물때마다, 그가 담배를 지필 불이 필요할때마다 그것은 꺼내어졌었다. 그러니까, 그의 행동의 모든 이유는 시호였던 것이다.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
카랑, 지포 라이터 특유의 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짧게 맴돌았다. 시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거칠게 빼내어 바닥으로 내던졌다. 지펴지지 못한 담배가 힘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시호는 치밀어오른 짜증 탓인지, 머리가 아파와 결국 담배를 포기하고 휴식을 택했다. 쇼파에 구깃하게 몸을 뉘인 그가 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이제는 어둠을 밝혀주는 형광등 마저 짜증이 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이게 시비가 아니면 뭐란 말이야.”
직접적인 이유로 제 기분을 불쾌하게 만드는것도 모자라, 이제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든다. 시호는 다음날 또 받을게 분명한 선물을, 여태 받아왔던 선물들과 함께 버려주리라 결심하며 힘겹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크리스마스, 내일은 그가 자신에게서 모습을 감춘지 딱 일주일이 되는 빌어먹을 기념일이었다.
“안녕.”
“……”
“나 보고싶었어?”
불청객은 또 한번 예고없이 찾아왔다. 어디 유명한 탐정소설에 나오는 악당과 주인공의 재회에 죽었다 살아 돌아온 악당이 할 법한 모습과, 말과 함께. 시호는 이른 아침 맞이한 처참한 몰골을 한 악당의 얼굴에 쿠션을 내던졌다. 윽, 짧은 고통이 방안을 울렸다. 던져진 쿠션을 갈무리하며 무어라 말하려던 악당의 입보다 먼저 열린 것은 시호의 쪽이었다.
“당신 뭐야?”
“…죽음조차 사랑한 남자인데.”
“내가 지금 그딴거 물어?”
“아, 이게 아닌가. 그럼… 리큐어인데.”
“쿠도군!”
능청스레 웃으며 볼을 긁적이던 그의 얼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헤실헤실 웃던 신이치가, 문을 거칠게 닫으며 잠금장치까지 잠구고 시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곤 제게 쿠션을 내던진 손목을 틀어쥐며 험악한 표정을 하고 시호에게 일갈했다.
“너,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잖아.”
“내가 지금 그걸 이야기하는게 아니잖아.”
“셰리.”
“이거 놔!”
피범벅이 되어서, 어디 하나 멀쩡한 곳 없이 꼴에 절뚝거리면서도 제게 성큼 다가와 손목을 틀어 쥔 그가 기가 찬 시호였지만, 자신이 무얼 말하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이야기를 돌리는 그에 시호는 한계점에 다다른 것을 느꼈다. 그가 자신을 잘 달래려 재차 코드네임을 부른다는 것도. 그 빌어먹을 태도에 속이 뒤틀려 시호는 신이치의 손을 거칠게 쳐내곤 쇼파에 접어두었던 백의를 집어 빠른 걸음으로 문으로 향했다.
“……시호.”
“……”
“……사람을….”
“……”
“…사람을, 죽였어.”
문고리를 쥐고 있던 시호의 손이 멈추었다. 시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문고리를 쥐기만 한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것이 방아쇠라도 된 듯, 굳게 다물려있던 신이치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노크라고 의심을 받았어. 너도 알고 있었겠지만.”
“……”
“진은 항상 날 의심했으니까. 쌓아뒀던 의심에 확신을 가진거지.”
“……”
“리큐어가 노크다… 아주 좋은 이유 아니었을까. 진에게는.”
그의 말은 옳았다. 진은 언제나 그를 경계하고 있었으며, 신용은 하되 신뢰는 하지 않았다. 언제라도 제 의심에 확신이 들면 겨누었던 이마의 총구를 망설임 없이 당겨버릴 사람이었다. 그런 진에게 네임도 없는 고작 말단 조직원의 말이라도, 이유가 됐던 것이다. 언제나 겨누고 있던 총구의 방아쇠를 당길 아주 좋은 핑계가.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뻔했다. 자신에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내뱉은 날, 진에게 불려갔고 럼이 내린 특별 지시라며 며칠 굴려지다, 겨우 어제 끝내 의심을 버리지 못한 진한테 목숨 협박 좀 당하고 노크가 아니라면 자신이 보는 눈 앞에서 너를 노크라고 고발한 조직원을 죽이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마 한 가운데에 총알을 쑤셔박아주라며. 시호는 그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가 먼저 말했을뿐더러, 이렇게 멀쩡히 살아 돌아온 것은 제 목숨을 빌기 위해 다른 목숨값을 지불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죽였어.”
“……”
“그랬더니 순순히 보내주더라. 럼이 오케이 사인이라도 보냈는지.”
“……”
“진은 아직까지도 믿지 못하는 눈치지만.”
끈질긴 자식.
신이치의 미간이 구겨졌다. 진에게 작은 욕짓거리를 뱉던 그는, 시호의 등을 향해 마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못왔어.”
“……”
“미안해.”
누구에게 하는 사과인지 몰랐다. 애초에 왜 자신에게 사과하는지도 몰랐고. 시호는 그저, 말 없이 돌리지 않았던 몸을 돌려 그에게 다가왔다. 팔에 걸쳐두었던 백의를 펼쳐 그의 머리를 감쌌다. 세상에서 그를 숨기듯이, 그렇게. 소맷부분을 집어 그의 피묻은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낸 시호의 손길을 신이치가 밀어내었다.
“내 피 아니야.”
“알아.”
“……”
“닦아내야 상태를 볼거아니야. 아무리 명의라도 이렇게 피범벅인 상태에서는 볼 것도 못 봐.”
시호의 백의가 신이치에게 묻은 혈흔으로 붉게 물들여져갔다. 꼼꼼히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낸 시호가 그의 몸을 훑으며 미소지었다.
“몸은…”
“……”
“옷이 온통 새카매서 안보이니 패스. 일단 얼굴부터.”
피 묻은 백의의 소매로 그의 뺨을 잡고 좌우로 살펴보던 시호가 뺨을 놓아주며 그의 등을 밀었다. 앉아. 턱짓으로 쇼파를 가르킨 시호의 행동에, 신이치는 군소리 없이 움직였다. 시호의 백의를 뒤집어 쓰고 멍하니 쇼파에 앉아 있던 신이치의 시야에 발자국이 남은 짓이겨진 담배 한 개비가 들어왔다. 그는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들어, 제 손에서 굴려댔다.
“너, 금연한다고 하지 않았나.”
“어.”
“근데…… 폈어?”
“뭘…, ……아.”
의료용 장갑을 끼고 치료 도구를 준비하던 시호가 신이치의 손에 들린 담배를 보며 단말마를 뱉었다. 별 다른 말을 찾지 못해 시선만 굴리던 시호는 치료 도구를 갈무리하여 신이치의 앞 자리에 앉았다. 익숙하게 알콜솜을 꺼내어 그의 얼굴에 두드리던 시호가 긍정을 표했다.
“어제 밤에. 담배가 고파서.”
“왜?”
“……”
“나 때문에?”
세상에, 자신감도 넘치시지. 시호는 그의 물음에 얼굴을 찌푸리며 알콜솜을 두드리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악, 짧은 고통의 비명이 신이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무언가 투덜거리고 싶은 눈치였으나 제 치료는 시호의 손에 달려있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시호의 치료를 받으며 도륵도륵 시선만 굴리던 신이치의 눈이,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벽에 걸려있는 달력 하나. 그 달력을 빤히 보던 신이치가, 무언가 생각하는 듯 허공을 잠시 바라보다 아, 침음을 내며 얼굴에 밴드를 붙여주고 있던 시호의 손목을 잡아챘다. 시호는 갑자기 강제로 멈추어진 치료에 짜증이 났는지 그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뭐야?”
“오늘… 그 날이잖아.”
“그 날?”
“크리스마스.”
움찔, 시호는 작게 몸을 떨었다가 이내 잡혀있는 그의 손을 힘을 주어 풀어내며 밴드를 마저 꼼꼼히 붙였다. 아직 붙일 곳이 더 남았다는 듯이 넓은 밴드의 일부를 가위로 자르며 시호가 답했다.
“그래. 맞아. 크리스마스야. 근데 뭐?”
“뭐냐니… 오늘 받았어?”
“뭘.”
“선물.”
밴드가 잘 달라붙게 제 뺨을 꾹꾹 누르는 신이치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시호에게 물었다. 그가 말하는 선물이 저 매일 같이 포장지의 색만 바뀌어서 건네어지는 내용물이 텅텅 빈 작은 네모 상자를 말하는것인가. 생각을 해보아도 그가 말하는 선물이란 그거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 시호는 마지막 밴드를 붙여주며 약한 따귀도 함께 곁들어주었다. 갑자기 맞은 뺨에 악! 소리를 뱉은 신이치가 뺨을 감싸쥐며 일어선 시호를 억울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뭐야! 갑자기 뺨은 왜 때려!”
“당신이 말한 선물이 저 색 쪼가리만 바뀌어서 매일같이 받은 쓸모없는 네모상자라면 받았지.”
“아, 그래? 부탁 잘 들어주었….”
“정말 쓸모없는 선물도 뭣도 아니었지만.”
애초에, 저걸 선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거야? 내용물 하나 없는 네모상자들뿐인데도? 짜증어린 소리로 방 구석에 쌓아두던 여러개의 상자들을 손가락질하는 시호에게 신이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게 다 이유가 있는데…. 어렵사리 꺼내진 그의 반박이었으나, 그것이 뭔 소용이 있냐는 듯 시호는 그를 노려볼뿐이었다. 결국 먼저 꺾인 것은 신이치쪽이었다. 따갑게 쏟아지는 시호의 눈길에 떠밀려 한숨을 쉰 그는, 제 머리를 헝클며 몸을 일으켜 시호가 쌓아두던 상자들 쪽으로 다가가 그 앞에 앉았다.
아무렇게나 쌓인 상자들을 차곡차곡 모아 무언가를 하는 그의 등에 어디 뭘 하는지 보자는 듯이, 시호는 팔장을 끼고 그의 등을 응시했다. 초록색과 붉은색의 네모상자들을 엇갈려 쌓던 신이치는 마지막 노란 리본이 묶인 초록색 상자를 맨 위에 쌓고 나서, 시호를 향해 돌아보았다.
“자, 완성.”
“…그게 뭔데?”
“보면 모르냐. 트리 아니야.”
“……하아?”
그러니까 결국, 이 쓸데없고 지긋지긋한 선물공세의 끝이 결국 트리였다는 소리다. 그것도 나무도 뭣도 아닌 네모난 상자들로만 쌓아올린. 어이없다는 듯이 되묻는 시호에게 신이치가 삐죽, 도끼눈을 떴다.
“넌 낭만도 로망도 없냐. 크리스마스잖아. 크리스마스하면 트리, 트리하면 크리스마스지.”
“……”
낭만… 로망… 그게 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못할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호였으나, 신이치는 그저 만족한다는 듯이 삐뚤게 묶인 꼭대기의 노란 리본 끈을 풀어 다시 묶고 있었다. 목숨 협박당하다 정말 머리 하나 어디 잘못 맞은건가, 그의 사고방식이 그 때문에 유아기로 퇴행했나 싶어 시호는 의심 반, 어처구니 반의 마음으로 신이치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틀어쥐며 아까 전처럼 좌우로 그의 고개를 돌려 열심히 관찰했다.
“멀쩡한 것 같긴한데….”
“…야. 나 정신은 건강하거든?”
시호가 자신에게 무슨 오해를 했는지 단번에 이해한 신이치가 구겨진 억지웃음을 지으며 제 머리를 쥔 시호의 손을 떼어내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가 잘못됐다 믿고 여러 가지 가설을 중얼거리는 시호를 노려보던 신이치가 그의 손목을 쥐고 쑥,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 때문에 다리의 균형이 무너져 시호가 그의 품에 쓰러졌다. 넓고 탄탄한 그의 가슴께에 졸지에 얼굴을 묻어버린 시호가, 잠시 고장난 듯 멍하니 있다 퍼뜩,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잔뜩 붉어진 얼굴로 씩씩- 성을 내었다.
“뭐, 뭐, 뭐하는 짓이야!”
“우와, 새빨개. 여기 이 상자트리에 있는 붉은색보다 붉은 것 같다, 너.”
“말장난 하지마!”
“말장난 아닌데.”
시호의 성냄에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 신이치가 꼿꼿하게 서 있는 시호의 몸을 끌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무리 시호가 발버둥쳐도 남자의 힘은 역시 이길 수 없어, 결국 포기한 듯 잠잠해지자 신이치는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얌전하면 얼마나 좋아.”
“지금 당장 메스로 찔러버리는 수가 있어.”
“아, 야, 내가 너한테까지 목숨 협박을 받아야겠냐?”
흉흉한 눈빛을 하고 신이치를 바라보던 시호와, 윽- 소리를 뱉으며 몸을 떨던 신이치의 얼굴이 서로 마주했다. 푸른 눈동자와 녹색 눈동자가 교차하며 생긴 잠깐의 틈은 빠르게 깨졌다. 너나 할것없이 두명의 입에서 웃음이 큭큭, 터져나왔다. 신이치는 저를 향해 웃는 시호의 웃음을 바라보다, 제법 그럴듯한 상자트리를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역시 좋다, 너.”
“……뭐?”
“처음엔 그냥 심심한거였어. 너에게 다짜고짜 크리스마스에 온다고 했던거.”
“……”
“너도 심심할 것 같고, 나도 심심하고. 피차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모이면 뭐, 일말의 재미라도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말했던거야.”
시호의 시선이 신이치와 함께 그가 쌓아올린 상자트리에게로 옮겨갔다. 신이치는 잠시 입을 다물다, 말을 이었다.
“너에게 그렇게 말하고 일을 하러 돌아가는데… 문득 깨달았어.”
“……”
“분명 심심함을 달랠 많은 것들이 있을텐데도, 왜 나는 너에게 찾아갔는지.”
“……”
“왜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재미가 있겠다… 나쁘지는 않겠다 생각했는지.”
그것까지 말을 잇던 그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무언가를 쥔 채로 손을 빼내었다. 시호에게 두르고 있던 팔을 거두어 시호의 손을 끌어당긴 신이치가 시호의 손을 펴 그 위에 자신이 방금 꺼낸 무언가를 올려두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차가움과 옅은 금속냄새. 지포라이터였다.
“담배따윈 피지도 않는 내가 귀찮게 왜 매일 라이터를 들고다니는지.”
“……”
“온갖 가설을 세우고, 여러 가지로 생각해봤는데…. 그제야 알겠더라.”
“……”
“모든 이유가 너였어.”
“……”
“내 모든 행동의 이유가… 너였어. 그냥, 너 하나였어.”
너 하나로 인해 내 세계가 뒤바뀌어버린거야.
거창한 말 한마디 없이, 가슴 떨리는 고백 하나 없는 말이었다. 그저 모든 이유가 자신 하나라는, 세계가 뒤바뀐 이유가 자신 한명 때문이라는 이야기. 시호는 그 모든 말을 제 안에 담았다. 사랑한다는 단어 하나 없는 서툰 고백도, 자신을 놀리던게 무색하게 똑같이 붉어져버린 신이치의 얼굴도. 시호는 제 손에 올려진 지포 라이터와 그의 손을 함께 맞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과 나는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은 못 받을거야.”
“뭐? 왜.”
“착한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니까. 산타는.”
“하아?”
“그야… 우리는 착하지 못하잖아?”
셰리와 리큐어니까.
장난스레 미소짓는 시호의 말에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던 신이치가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그렇네. 리큐어와 셰리니까. 그녀의 말을 되새기며 긍정하던 신이치가 시호의 뺨에 손을 얹었다. 훅, 다가온 그의 얼굴에서 옅은 열기가 터졌다.
“그럼 착하지 않은 서로에게, 서로가 선물을 주는걸로.”
“…어머, 키스가 선물?”
“왜, 꽤 근사한 선물아냐? 너가 그렇게 싫어하는 상자트리보단.”
다소 투덜거리듯 뱉어진 신이치의 말에 큭큭, 시호가 웃음을 뱉었다. 그러네. 근사해. 상자트리보단. 뒤이어 이어지는 말에 신이치는 삐죽, 입을 내밀다 시호처럼 큭큭, 웃었다. 시호의 두 뺨이 신이치의 손 안에 가득 담겼다. 코끝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서로의 입에서,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황홀한 겨울의 기념일에. 서로에게 축복을 담아서.
“메리크리스마스, 시호.”
“메리크리스마스, 쿠도군.”
LAST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