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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밤의 선사

​시마 |베르시호

 

 ‘철컥’하고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렸다. 열쇠를 가방에 도로 집어넣는 여자의 뒤로 시린 겨울바람이 ‘휭-’하고 지나가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여자가 거실로 들어섰을 즘 여자가 입고 있던 두꺼운 코트 안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여보세요. 입을 움직일 때마다 여자의 입가에 자연스러운 주름이 잡혔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진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라며 잔뜩 추켜세워지던 얼굴이었다. 하지만 과연 누가 의심이나 했을까 그것이 정말로 변치 않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말이다.

 

 

 

 

 

 

[네, 샤론 씨 드레스 피팅 말인데요, 역시 내일 밖에 시간이 안 난다고 합니다...]

 

“상관없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고”

 

[그럼 내일 아침 10시에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 스케줄 끝나면 크리스마스까지 따로 잡힌 건 없습니다. 따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래, 기다리지”

 

 

 

 

 

 

따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인사에 여자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녀는 이런 날까지 스케줄이 잡힌 것을 미안해하는 매니저의 태도가 새삼 놀라웠다. 그녀에게는 그저 별 볼일 없는 한 해가 또 한 번 지나간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여유롭게 전화를 끊으며 여자는 거실 소파에 몸을 맡기고 앉아 다리를 꼬았다.

 

 

 

 

집안이 고요한 것을 보아 그녀와 함께 지내는 어린 동거인은 벌써 잠이 든 모양이었다. 적어도 내일 아침까진 마주칠 일이 없었기에 그녀는 목 언저리를 더듬어 변장의 흔적을 벗겨냈다. 군데군데 파여 있던 주름들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이제 성가신 가발을 벗어던질 차례였다. 그리고 여자의 옆에 있던 이불 뭉치가 꿈틀댄 것은 딱 그때의 일이었다. 너무도 작은 움직임이었기에 놓칠 수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몇 년을 구른 그녀였다. 어린아이의 티 나는 기척하나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가발을 거두려던 손을 멈추고 여자는 몸을 일으켰다. 변장이 반쯤은 없어진 상태라 잠시 고민했지만 잠에 취한 아이가 그것까지 보지는 못할 것이었다. 둘둘 말린 이불을 펼쳐내자 제 키의 반도 안 되는 조그마한 여자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이를 쓱 훑어보던 여자는 아이의 눈가가 유난히 붉은 것을 발견했다. 오늘도 제 언니 생각에 눈물이라도 흘린 모양이라며 여자는 생각했다. 천재라고 조직 내에 벌써부터 크고 작은 소문이 돌았지만 역시 애는 애였다. 그리고 아이 앞의 여자는 그 점이 가장 성가셨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겨우겨우 살아가는 존재, 저의 손길이 끊기면 뭐하나 눈에 차게 하는 것이라곤 공부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 아이를 맡으라는 것이 보스의 명령이었고 조그마한 게 장차 조직의 두뇌가 될 인재라 하니... 그건 그랬고 이렇게 자다 감기라도 걸린다면 더 귀찮아질 것이 뻔했으니 아이를 안아들고 방으로 걸어갔다.

 

 

 

 

방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 아이가 기어이 눈을 뜨고 말았다.

 

 

 

 

 

 

“샤론... 크리스...?”

 

 

 

 

 

 

웅얼웅얼 입안에 소리를 잔뜩 머금은 채로 아이는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첫 번째 사람을 부를 때 아이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고 곧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부른 두 번째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있었다.

 

 

 

 

눈앞의 사람은 샤론이며 크리스였다. 아이는 그것을 몰랐다. 아니, 아직까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어린아이에게 한없이 다정한 엄마와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딸’ 있음직하지 않는가. 그것이 그녀가 그리는 시나리오였다. 아직 아이가 그 정체를 아는 것은 시기 상조였다. 현재 설정상 그녀의 딸 크리스는 많이 쳐줘봐야 고등학생 나이 정도가 한계였다. 그런데 변장을 푼 그녀의 모습으로 딸 행세까지 하기에는 아직까지 무리가 있었기에 아이가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앞으로 몇 년 뒤가 될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는 그녀의 연극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오게 될 관객이기도 했다. 알게 되는 날엔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그려보았다. 적어도 지금처럼 막 잠에서 깬 말간 얼굴은 아닐 것이라

 

 

 

 

 

 

“샤론...”

 

“왜 계속 불러”

 

 

 

 

 

 

뭔가를 말할 듯 입술을 달싹이던 것도 잠시였고 아이는 샤론의 품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시호”

 

 

 

 

 

 

샤론이 가만히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말할 거면 빨리하라는 일종의 재촉이었으나 제 손과 샤론의 얼굴에 번갈아 시선을 두며 눈치만 보는 것이었다.

 

 

 

 

 

 

“샤론...이에요...?”

 

“그래”

 

 

 

 

 

 

역시 그것 때문이었나. 샤론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땠다.

 

 

 

 

 

 

“화장법을 조금 바꿔봤어. 너도 알다시피 며칠 뒤엔 시상식이 많으니까 이것저것 해보는 중이란다.”

 

 

 

 

 

 

그 말에 시호는 납득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진한 눈썹이 덩달아 올라갔다.

 

 

 

 

 

 

“늦었으니까 이제 자야지?”

 

 

 

 

 

 

살살 달래며 눈가를 쓸어주자 시호가 작게 ‘아’ 소리를 내었다. 눈물을 들켰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풀 죽은 표정을 했다.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샤론의 손길에 눈을 꼭 감고 몸을 맡겼다. 다정한 손길을 내미는 바로 앞의 사람이 정말이지 쉽게도 믿는다며 비아냥대는 줄은 아마 꿈에도 모를 것이었다.

 

 

 

 

연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잘 준비를 시키고 시호를 침대에 눕힌 뒤 이불을 단단히 덥혔다. 하지만 시호는 이미 잠은 저 멀리 달아난 얼굴로 샤론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주먹을 꼭 쥐곤 입을 열었다.

 

 

 

 

 

 

“샤론”

 

“자자.”

 

 

 

 

 

 

샤론은 이 이상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단호히 쳐내면 어련히 포기하고 잘 것이라고 여겼지만 답지 않게 제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것이 아닌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 물기가 가득한 눈동자로 바라보면 뭐라도 해줄 줄로 알았던 것인지. 확실히 평소와는 달랐다.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려던 샤론은 어디가 아파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싶어 시호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뜨겁다 라든가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있잖아요... 샤론”

 

“왜, 어디 아파?”

 

“이리 와 봐요..”

 

 

 

 

 

 

두꺼운 이불 속에서 꼬물거리며 작은 팔을 빼낸 시호가 샤론에게 손짓했다. 못 이기는 척 가까이 다가가 몸을 숙여주었다. 그러자 낑낑대며 상체를 일으켜선 샤론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사람이라곤 둘밖에 없는 집안에서 무슨 대단한 비밀 이야기를 하려 이렇게까지 하는지 문득 호기심이 동한 샤론은 어린애의 비밀놀이에 아주 조금만 더 어울려 주기로 했다. ‘A secret makes a woman woman.’ 이 집안에서 비밀을 감춘 사람은 비단 시호만이 아니었으므로 샤론은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내일 밤엔... 굿나잇키스 해주면 안 돼요...?”

 

 

 

 

 

 

샤론의 귓가에 대고 시호가 소곤소곤 속삭였다. 부탁이라기보단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크리스마스 선물, 뭐 그런 걸까?”

 

 

 

 

 

 

샤론은 저에게 바짝 붙은 시호를 그대로 안고 살며시 토닥였다. 손길은 다정했다. 하지만 그 손길이 종종 숨이 막힌다고 시호는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 됐어요. 안 해줘도 돼요...”

 

 

 

 

 

 

눈치가 빠른 것이 이럴 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샤론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무엇이 이 아이를 흔들어놓는지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와중 시호 쪽에서 먼저 포기해버리니 김이 샜다. 어느새 시호는 품에서도 빠져나갔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도로 누워버렸다. 샤론이 깊게 한숨을 한번 쉬었다. 화나게 해버렸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불 속의 시호가 크게 움찔 떠는 것이 밖에서도 눈에 띠였다. 물론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혼을 낼 생각은 없었다. 쓸데없는 감정 낭비라고 샤론은 생각했다.

 

 

 

 

 

 

“내일은 자기 전에 불러, 또 혼자 이불 뒤집어쓰고 울다가 지쳐서 잠들지 말고”

 

 

 

 

 

 

뜻밖의 수락에 놀라 벌떡 일어난 시호를 뒤로한 채 샤론은 그렇게 방을 나갔다. 문이 닫혔고 거실에서 약하게 비춰오던 불빛마저 차단되자 방 안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하지만 깜깜한 방안이 오늘만은 왠지 무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시호는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잤다.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는 사실을 들킨 것은 뒷전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시호가 세상모르고 자는 사이 눈발이 거세져 창문 밖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눈을 반쯤 감고 뜻 모를 소리로 웅얼거리며 거실로 나와 화장실에 들어간 시호의 뒤로 눈은 25일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그야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었다.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는지 시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샤론이 나갈 준비를 마치고 신발을 갈아 신는 중이었다. 부엌 식탁엔 지폐 몇 장이 펄럭이고 있었고 샤론은 시호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다.

 

 

 

 

 

 

“식탁에 돈 놔뒀으니까 먹고 싶은 거 시켜 먹어.”

 

“... 네”

 

“꼭 시켜 먹어?”

 

“알았어요..”

 

“혼자 할 수 있지? 오후에 올 거야.”

 

 

 

 

 

 

샤론의 말끝마다 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저렇게 과한 반응을 할 땐 좀처럼 말을 따르지 않았다. 얼마 전 촬영 탓에 집을 조금 오래 비웠을 때도 두고 간 돈이 반도 줄어있지 않았다. 샤론은 나가려던 몸을 틀고 시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뭘 제대로 시켜 먹은 적이 있어야지. 적당히 샌드위치라도 주문해 놓을 테니까 그거 먹어.”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서자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매니저가 보였다. 차에 올라타 곱씹어 보니 퍽 보호자 같은 행동이었다. 식사를 챙기다니 하지만 후회되진 않았다. 상냥할수록 크리스와의 대비는 더욱더 극심해질 것이었다.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30분 뒤, 샤론이 주문한 샌드위치가 도착했다. 집안으로 들여놓긴 했지만 내키지 않았던 시호는 두꺼운 책만 사락사락 넘길 뿐이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있는 형형색색의 거리에 대해 떠들어대던 TV는 꺼진지 오래였고 혼자 있는 집은 적막만이 가득했다.

 

 

 

 

적막을 깬 것은 창밖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인지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 소리에 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방해였다. 자신도 끼이고 싶다는 부러움이라든가 질투는 아니었다. 그저 조용한 독서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시호가 외롭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래와 어울릴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 편히 친구나 사귀고 있기에는 다들 시호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도 아니었고 시호도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제 성과에 아케미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을 시호는 일찍이 깨달았다. 시호의 학업적인 성과에 대한 관심은 가히 집착과도 같아서 그것 외에 다른 모든 것들에 소홀했다. 시호에게 외면받은 채 차게 식어가는 샌드위치 역시 시호가 소홀한 것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호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배고픔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고 허기를 채우려 시호가 샌드위치에 손을 뻗었을 때는 이미 샤론이 현관 앞에 도착한 시간이었다. 샤론이 문을 열자 고요한 집안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시호.”

 

 

 

 

 

 

꼼지락거리며 포장지를 벗기고 있던 시호는 갑작스러운 샤론의 등장에 그대로 얼음이 되어 숨을 삼켰다.

 

 

 

 

 

 

“됐다. 어서 먹기나 해.”

 

 

 

 

 

 

말이 떨어지자 찌익- 하고 포장지가 뜯겼고 조그만 손으로 샌드위치를 잘 모아서 그러쥔 뒤에 한입 베어 물었다. 시호가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며 먹고 있던 도중 샤론이 시호 앞에 머그컵을 내밀었다. 김이 펄펄 나는 컵 안에는 따끈하게 데운 우유가 들어있었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식혀서 마셔.”

 

 

 

 

 

 

데여서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를 봐 줄 생각은 없었다. 샤론은 시호의 속에 섞인 엘레나의 피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겉모습이라도 예쁘게 꾸며놓았다. 제법 예쁘게 생긴 건 사실이라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그 겉껍데기에 흠집이 나는 것은 사절이었다. 시호는 그게 저에 대한 염려인 줄로만 알았다.

 

 

 

 

시호가 손에든 샌드위치를 옆에다 살짝 놓고 컵을 받아 들자 샤론은 그대로 시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굿나잇 키스는 왜 해달라고 한 거야?”

 

 

 

 

 

 

질문과 함께 샤론은 시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놀라서 샤론을 바라봤던 시호와 눈이 마주쳤는데 씹는 것도 멈추고 멍하니 있기에 손으로 턱을 닫아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때까지 한 번도 그런 부탁한 적 없잖아. 이유라도 알려줘야 하지 않겠니?”

 

 

 

 

 

 

시호는 눈을 도르륵 도르륵 굴리며 망설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거 다 먹으면 말해줄게요.”

 

 

 

 

 

 

그 말 뒤로 먹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영원히 먹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시호가 대답을 해야 할 순간은 찾아오고야 말았다. 홀짝이던 컵을 내려놓고 슬리퍼를 벗더니 양발을 소파 위에 올리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렇지 않아도 몸집이 작은 시호였는데 몸을 웅크리니 더 조그마해 보였다. 눈물을 참는 것인지 눈에 힘을 꾹 주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일 언니랑 영상통화 시켜준다고 했잖아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근데, 울다가 자면 들키니까...”

 

 

 

 

 

 

그러니까 시호의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어두운 방에 혼자 남겨져 잠에 들면 늘 울어버리고 마니 안심시켜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아케미는 시호의 얼굴을 보자마자 외로움을 알아차릴 것이었다. 약간 부은 눈이나 빨간 눈가, 잠긴 목소리 같은 아주 작은 눈물의 흔적을 아케미는 화면 너머로도 한눈에 알아볼 것이라는 확신이 시호에게는 있었다. 이번 영상통화는 자매에게 주어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선물이 어디까지나 선물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시호가 찾은 해결책이 어제의 그 부탁이었다. 효과가 있을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적어도 그 다정한 손길이, 상냥한 목소리가 시호의 깊고 편안한 잠을 기원해 준다면 울지 않고 잠에 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어제도 그랬다. 허락을 받아낸 뒤 시호는 편안히 잠들었다.

 

 

 

 

너는 상상이상으로 나에게 매달린다고 샤론은 생각했다. 호의를 보내는 상대에게 지나치게 약했다. 사람을 단호히 쳐내지 못했고 분노를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다. 함부로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것은 조직에서 살아남기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래서야 실험용 쥐 한 마리 제 손으로 보낼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정을 주는 것이 너무도 헤펐다. 조금 더 영악할 필요가 있었다.

 

 

 

 

말을 마친 시호는 다시 책에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샤론의 손이 조금 더 빨랐고 능숙한 손길로 책갈피를 끼운 뒤 책을 덮어 저 멀리 치워버렸다.

 

 

 

 

 

 

“그러니까 네 말은 네 언니한테 잘 지내고 있다고 꾸며내 보겠다는 거잖아, 안 그래?”

 

“... 맞아요.”

 

“그럼 책 읽는 거 말고 뭐라도 해야지”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면...”

 

“시호야, 거짓말을 믿을 만하게 만들려면 진실을 조금 섞어야지. 터무니없는 말만 늘어놓으면 똑똑한 네 언니가 믿겠니?”

 

 

 

 

 

 

화술로 상대를 홀리는 것에는 통달한 샤론이었다. 그렇기에 시호 하나 꾀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저기 트리 있지? 저기다 장식이라도 몇 개 달고 와봐”

 

 

 

 

 

 

 

샤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호가 트리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트리는 생각보다 높아서 시호는 까치발을 들고 열심히 장식을 걸었지만 트리 밑쪽에만 걸릴 뿐이었다. 원래 그리 많은 장식이 달려있지 않은 상태라 윗부분이 듬성듬성하고 아랫부분이 꽉 채워진 트리는 마치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오순도순 꾸미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웬만큼 장식을 끝낸 시호는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다음으로 샤론은 TV를 틀었다. 이것저것 채널을 돌리던 손이 멈춘 곳에는 NORAD 산타 추적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옆에 앉은 시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시호의 표정은 시큰둥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래도 시호는 산타를 안 믿나 보네."

 

“당연하죠. 저건 그냥 방송일 뿐이잖아요. 애초에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날아다닌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슴 코는 어떻게 빛나는데요? 조명이라도 단 거면 말이 되긴 하겠지만 또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어쨌든 안 믿어요.”

 

 

 

 

 

 

어느샌가 소파 구석에서 뒹굴고 있던 제 애착 인형을 꼭 그러안곤 조곤조곤 반박하는 것이 너무도 어울리지 않아 샤론은 하마터면 웃음이 날 뻔했다.

 

 

 

 

 

 

“산타도 안 믿으면서 선물은 받으려고 하는 거야? 산타가 알면 괘심해 할걸?”

 

“.....”

 

 

 

 

 

저를 놀리는 거라 여겼는지 시호는 한동안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었다.

 

 

 

 

 

 

 

 

 

 

 

겨울 해는 짧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어느덧 시호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보송보송한 잠옷을 챙겨 입고 소파 위에 놔두었던 인형을 옆구리에 꼈다. 정말 샤론이 방까지 따라오는 것이 맞는지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시호가 방으로 들어섰다. 이불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가자 이불 속은 이미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몸을 눕히자 샤론은 시호의 목뒤로 손을 넣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피부에 닿는 샤론의 손이 차가웠다. 소름이 돋은 시호가 한번 부르르 떨자 잘 덮고 있던 이불이 흐트러졌다. 샤론은 이불을 단단히 고쳐 덮어 주었고 시호의 앞머리를 사라락 넘겼다. 시호가 그 손길에 가만히 몸을 맡기면 샤론은 반대쪽 팔을 뻗어 불을 껐다. 방 안이 어두워지자 시호는 눈동자만 굴려 좌우를 살폈다.

 

 

 

 

 

 

“완전히 잠들면 갈 거야.”

 

 

 

 

 

 

그 말에 시호가 샤론의 손을 꼭 잡았다. 제 손에 반도 안 되는 조그마한 손에 붙들려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시호는 다른 것은 몰라도 자존심 하나는 강한 아이였다. 그 탓에 괜한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오기로 버티다 사달이 나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 그런 시호가 다 굽히고 그런 부탁을 할 줄이야. 샤론은 시호에게 아케미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했다.

 

 

 

 

애초에 성격상 유학의 ‘ㅇ’자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시호를 이곳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것도 아케미가 있어서였다. 제 목숨에 딸린 것이 저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시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를 조직에 붙들고 있는 것은 미야노 아케미라고 샤론은 생각했다.

 

 

 

 

 

“샤론...”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온 샤론은 시호의 얼굴에 잠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약간 눈시울이 붉어진 것도 말이다. 입꼬리를 끌어올려 보기 좋은 미소를 만들어내고 시호의 얼굴 가까이로 몸을 숙였다.

 

 

 

 

 

 

“빨리해줘요... 울면 산타가 선물 안 줘...”

 

“아깐 산타 없다면서”

 

“..... 재워줘요”

 

 

 

 

 

 

모순을 깨달았는지 제 눈을 피하며 답지 않은 어리광을 부리는 시호의 얼굴을 살며시 잡아 고정시킨 뒤, 샤론은 시호의 작고 보드라운 입술에 저의 것을 살며시 가져다 댔다.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맞닿은 아이의 체온이 따뜻했다. 이불 속에서 몸이 충분히 데워진 듯했다. 가볍게 맞추었던 입술을 땠다. 막혔던 숨이 트였다. 이것보다 몇 배는 거칠고 긴 입맞춤을 밥 먹듯 해온 샤론이었다.

 

 

 

 

 

 

“잘 자. 메리 크리스마스”

 

“샤론도 메리 크리스마스...”

 

 

 

 

 

 

그 행위에 고작 작은 의미 하나 들었다고 그것이 그리 힘겨워졌다. 이것을 일상적으로 할 바에야 밤마다 훌쩍이는 소리를 듣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겠다고 샤론은 생각했다. 나름 노력했으니 작은 성과나 있기를 샤론은 일정한 속도로 시호를 토닥였다. 쌔근쌔근 곤히 잠든 시호의 숨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채웠다.

Merry Shihom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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